'하기' 말고 '해보기'

새해 목표 세우기의 기술

계획을 덜 세우면 한 해는 어떻게 흘러갈까? 작년에 실험을 해봤다.

작년 새해 목표를 세울 때, 나는 변화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래서 목표를 살짝 비틀어봤다. 기존의 'OO하기' 대신 'OO 해보기'로 바꿔 써보기로 한 것이다. 이 표현의 차이는 중요했다. 반드시 완수해야 되는 뻣뻣한 명령이 아니라, 싫으면 안 해도 되고, 중간에 멈추거나 바꿔도 된다는 상냥한 허락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융통성 없는 목표 대신 '이쪽으로 한 번 가볼까?' 정도의 마음만 품자 매일이 달라졌다. 눈앞의 일에 몰두해 실행하다 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선택지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얽매일 목표가 없었으니 그때그때 경로를 수정할 수 있었다. 1번 결정을 하고, 2번 결정을 하고, 3번 결정을 하고, 그렇게 n번째 결정을 지나오자,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좋고 나쁨은 둘째치고, 연초의 계획 속엔 없던 풍경이었다.

나는 도착지가 꽤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길을 걸었을 때만 볼 수 있는 길들이 있고, 그런 샛길들을 보기도 전에 출발점에서 목적지와 경로를 정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니. 처음부터 모든 길을 볼 수 있는 게 아닌데, 그걸 여태 몰랐다.

스티브 잡스는 이 이치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애플에 복귀한지 얼마 안 됐던 2001년, "10년 후 당신은 어떤 모습일 것 같냐"는 질문에, 잡스는 "글쎄요. 제 헤드라이트는 그렇게 좋지 않아서요. 장기 계획은 별로 생각 안 합니다"라고 답했다.

You know, my headlights are not that good. I don't know. I don't really think about it.
- Steve Jobs

잡스는 자신은 주로 1~2년 내지 3년 정도를 내다볼 뿐이라고 했다. 5년짜리 계획은 대부분 너무 많이 바뀌어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잡스의 헤드라이트조차 성능이 그럴진대, 내 헤드라이트가 멀리 봐야 얼마나 멀리 볼 수 있을까? 밤길 운전하듯 어둑한 길을 내 발로 정찰나가 직접 밝히는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미리 다 내다봐야 한다는 부담이 내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한때 좋아했던 이 구절을 다시 불러온다.

去去去中知(거거거중지)
行行行裏覺(행행행리각)

가고 가고 가는 중에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속에 깨닫게 된다.

'일단 가면서 생각한다'는 대책 없는 태도가 아니다. 가는 중에 얻게 될 앎, 자원, 기회들을 믿고 계획에 여백을 남겨두는 일일 수 있다.

올해도 '하기'보단 '해보기'를 더 가까이하려 한다. 좀 모른 채로 출발해도 된다고, 걷기 시작하면 또 보일테니 일단 떠나보라고 스스로를 부추겨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