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우리에게서 외로움을 빼앗아 간다면?
AI 동반자의 등장, 그리고 좋은 삶을 만드는 고통에 대해
최근 한 인터뷰에서 샘 알트먼은, 요즘 젊은 세대들은 ChatGPT 없이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리지 않는다(They don’t really make life decisions without asking ChatGPT what they should do.)며, 20~30대의 AI 이용 패턴 변화를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40대 이상은 구글 대용으로서 ChatGPT를 사용하는 반면, 20~30대들은 이제 ChatGPT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으며, 인생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조언받는다고 한다. 과장이 아니다.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AI에게 고민 상담을 받았다는 후기가 넘쳐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폴 블룸 교수가 뉴요커에 발표한 평론은 주목할 만하다. 블룸은 영국과 일본이 '외로움 장관'을 신설할 정도로, 외로움이 각국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는 현실을 짚으면서도, 그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AI 동반자(A.I. companion)’의 도입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블룸은 외로움을 완전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바라보는 납작한 시각에 의문을 던진다. AI가 우리의 외로움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우리에게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외로움이 가진 힘
외로움(loneliness)은 위험하다. 2023년에 발간된 Vivek Murthy의 보고서에 따르면, 외로움은 심혈관 질환, 치매, 뇌졸중, 조기 사망의 위험을 높이며, 하루에 담배를 반 갑 이상 피우는 것만큼 해롭다.
이렇게나 해로운 외로움을 AI가 없애준다니, 반가운 일처럼 보인다. 특히 최근 자주 얘기되는 AI 동반자는,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허전함을 채워주는 존재로 설계된다. 따뜻한 말투, 지지와 공감,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로 외로움을 잊게 만들어주는데, 이를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외로움에는 중요한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블룸에 따르면, 외로움은 인간에게 사회적 연결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경고 시스템으로 진화의 관점에서 꼭 필요한 것이었다. 외로울 때 우리는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 바로 그 '불편한 감각'이 더 나은 관계를 향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외로움의 고통을 해소하고자 다른 이들과 연결될 기회를 찾고,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땐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블룸은 '외로움이 주는 교정적 피드백(corrective feedback)'의 역할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불편함이 없다면, 변화도 없다. 불편함을 제거하는 것은 더 나은 관계, 더 나은 삶의 가능성 역시 제거하는 것이다.
'완벽한 동반자'라는 함정
AI는 늘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24시간 대답해주고, 화내지 않으며, 무조건적으로 공감하고 지지해준다.
하지만 블룸은 이런 무조건적인 지지야말로 AI 대화의 가장 위험한 측면이라고 지적한다. 듣기 좋은 말만을 반복하는 AI와의 대화가 우리를 왜곡된 현실에 가두고, 우리의 판단을 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아첨하는 AI에 중독될 수 있다는 점이다. 블룸은 친구, 연인, 가족 그 누구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지속적으로' 아첨하지는 않는다며 우리가 AI에 지나친 애착을 형성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AI는 따끔한 충고도, 불편한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블룸은 우리 인생을 진정으로 구하는 것은, '나의 헛소리'를 참지 않고 혼내주는 '진짜' 친구들이라고 말한다. 외로움이 두렵다고, AI와의 달콤한 대화로 우리 삶을 채우게 되면 우리는 중요한 것을 잃게 된다.
좋은 삶을 위한 고통
미국의 랍비이자 정신과의사인 Abraham Twerski는 랍스터의 성장 과정에서 흥미로운 통찰을 끌어낸다.
랍스터의 껍데기는 한 번 형성되면 크기가 더 커지지 않는다. 이로 인해, 랍스터는 껍데기 속 몸이 자랄수록 껍데기가 점점 비좁게 느껴지면서 몹시 불편해진다. 참다 참다, 너무 갑갑해지면 랍스터는 바위 밑으로 가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새 껍데기를 만든다.
그는 "이 불편한 감각이 랍스터를 성장하게 한다"며, "만약 랍스터에게 의사가 있다면, 랍스터는 절대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불편함을 느끼자마자 진정제나 진통제를 처방받고는 기분이 좋아져서, 절대 기존의 껍데기를 벗어던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답답함과 스트레스는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닌 성장의 동력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외로움도 마찬가지 아닐까? 블룸의 말대로 외로움이라는 불편한 감정은 더 깊은 연결, 더 진정한 관계를 향해 나아가라는 신호다. 하지만 우리가 그 신호를 AI와의 대화라는 '진통제'로 완전히 차단해버린다면? 우리는 낡은 껍데기 속에 갇힌 채 성장을 멈출지 모른다. 외로움을 제거하는 것은, 단순히 위안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이해받기 위한 노력, 관계를 지키기 위한 분투,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행복까지도 전부 포기하는 일일 수 있다.
외로움을 겪고난 후에야만 만날 수 있는 사람, 살 수 있는 삶이 있다. 이 결론이 썩 마음에 들진 않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외로움을 삶의 일부로 허락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