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면제권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을 보고 한 생각
질문도 폭력이 될 수 있을까?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을 보고 나니, 누군가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늘 최선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영화에는 서명 운동에 서명하기를 거부하는 고등학생 '주인'이 나온다. 주인은 '인싸' 재질에, 교사들에게도 귀염을 받는 학생인데, 이상할 정도로 친구 '수호'가 추진하는 서명 운동에 삐딱하게 군다. 다들 납득하지 못한다. '이렇게 취지가 좋은 서명 운동에 너는 왜 서명하지 않겠다는 건가?', '너와는 상관없다는 것인가?' 몰아세운다. 언제까지? 자신들이 납득이 가는 이유를 주인이 토해낼 때까지.
*
심리학자 브라이언 리틀은, 인간이 타인의 행동을 설명할 때 보이는 이중성을 짚은 바 있다. 내가 차선을 끼어들 때는 '너무 급해서 어쩔 수 없었다'며 상황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사람이 끼어들 때는 '매너 없는 인간이라서'라고, 타인의 성격(character)이나 기질을 이유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 we are more likely to ascribe traits to others, whereas we explain our own actions according to the situations we are in.
Brian R. Little, <Me, Myself, and Us>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는 건, 썩 신나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우리에게는 우리의 행동을 이해받기 위해 그 이유(Why)를 부연하는 습성이 있다. 내가 네 결혼식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날 어디를 가야하기 때문이고, 내가 지금 먼저 가봐야 하는 이유는 우리집에 이런 심각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상대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을 땐 이유를 요구한다. 왜 그러는 거냐고. 내가 납득되게 어디 설명해 보라고.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은, 매일의 일상에서 우리가 꽤 자주 품는 마음이고, 함께 일하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마음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이 마음을 다스려야 할 때가 있다. 말해도 아무렇지 않을 이유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는, 혹은 말하고 싶지 않은 사정이라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 어떤 이유는 모두에게 손쉽게 열어 젖힐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일본 드라마 <로맨틱 어나니머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私もそうですし、誰にも秘密はありますから。隠しておきたいことやできれば誰にも知られたくないこととか。
저도 그렇고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으니까요. 숨기고 싶은 일이나 가능하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라든가.
あるんですか?そういう秘密が。
あっいや、今のは答えなくていいです。簡単に答えられるぐらいならそれは秘密じゃないから。
있어요? 그런 비밀이.
아, 아니에요. 지금 건 대답 안 해도 좋습니다. 쉽게 대답할 수 있다면 그건 비밀이 아니니까.
이유를 내게 밝히지 않을 자유. 적어도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만큼은 더 많은 '이유 면제권'을 주자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대단한 비밀이 아니라도, 애초에 이유를 준비한다는 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냥 그러기 싫어서'를 포장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나.
때론 묻지 말고 넘길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내가 납득했을 이유일 거라고. 그리고 그 이유가 설사 내가 납득 못 할 것이라 해도 문제는 아니라고. 왜냐하면 나에게 '납득 받을 권리'가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세상에는 끝내 내게 도착하지 못할 '진짜 이유'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이유들을 내가 속속들이 알아야만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꼭 순도 100퍼센트의 이해가 있어야만, 부대끼며 살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른이 된다는 건 수많은 미스터리 속에서 아리송하게 살아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