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승진의 기술
손석희 앵커의 젊은 시절 리더십 일화
자리가 사람을 만들까? 아니면,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것일까.
손석희 앵커의 젊은 시절 일화는, 그 답을 일러주는 듯 하다.
2000년대 초반, 그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아침 뉴스의 앵커 자리로 막 복귀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하루는 시청률이 낮은 아침 뉴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개편안 회의'가 열렸는데, 그 회의에서 손석희 앵커가 보여준 모습이 후배 앵커의 눈에 무척 인상적이었다는 것이다.
"보통은 다들 빈 종이를 들고 가요. 뭘 적어가려고. 근데 손석희 선배는 책자 같은 걸 만든 거예요. 한 열 장 되는 개편안을 만들어 왔더라고요."
그는 당시 회의의 주재자도, 아침 뉴스의 향방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 윗선도 아니었다. 메인 앵커라 해도, 직급으로 보나 조직 내 역할로 보나 개편 방향을 공식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그 당시에 손석희 선배가 차장이었거든요. 그러면 위에 부장도 있고, 국장도 있고, 부국장도 있고 다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다 나눠주는 거예요."
"우리는 빈손으로 왔으니까, 당연히 그가 준 자료를 보고 회의를 하게 되잖아요. 그가 비록 차장이었어도 거기서 회의를 주재하는 거예요."
하지만,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이른바 '윗선'의 일을 스스로 준비하고 기획해 회의를 장악했다. 리더가 되었다.
당시 시대상을 생각하면 아마 월권에 가까웠을 것이다.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죠. 찬성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또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도 있을 거고. 그럼 '다음엔 이걸 이렇게 바꿔서 옵시다, 해봅시다' 갑자기 국장 역할을 하는 거예요."
"손석희 선배를 싫어하는 사람도 꽤 있었거든요. 개인적으로 나빠서가 아니라 질투도 있을 수 있고, 어린 사람이 나댄다고 볼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손석희 선배의 그런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아, 리더는 저렇게 만들어지는 거구나' 그냥 나는 종이 한 장 연필 하나 갖고 왔는데, 저 사람은 이미 개편안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다 조사를 해오고 나눠주고 회의를 하게끔 하는구나. 그게 리더가 아닌가 싶어요."
당연히 고깝게 보는 시선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견제도 그가 '실질적인' 국장 자리를 꿰차는 것을 막을 순 없었을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리더가 리더가 되는 것이다. 승진을 기다리느라, 마땅한 권한이 주어지기를 기다리느라 리더가 될 수 있는 순간을 놓쳐선 안 된다.
'월권'이라는 단어를, 조금 더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리더십은 '월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손석희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도 호명하지 않은, 그 자리에 스스로 앉을 때 우리는 비로소 리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