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시차
노벨상 수상자들은 왜 다들 나이가 많을까?
노벨상 시즌이 돌아왔다. 올해는 10월 6일부터 10월 13일까지 수상자가 발표된다고 한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노벨 박물관(Nobel Prize Museum)에는 노벨상 FAQ를 모아둔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 있다.
흥미로운 항목이 많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 자기자신을 후보자로 추천할 수 있는지? (안 된다)
- 한 사람이 여러 번 탈 수도 있는지? (가능하다, 여러 번 탄 사람도 조직도 있다)
- 노벨상을 받은 연구가 나중에 오류로 밝혀진 적 있는지? (있다)
- 노벨상 수상을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지? (상금은 재단에 귀속되지만, 거절해도 노벨상 수상자로 여겨진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답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나이에 대한 질문이었다.

Why are most Nobel Laureates so old?
노벨상 수상자들은 왜 다들 나이가 많나요?
The main reason Laureates tend to be older is that it often takes time before a work has definitively been confirmed and the understanding of its importance has been established.
어떤 업적이 명확히 검증되고, 그 중요성이 충분히 이해되고 자리잡기까지는 대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에요.
상식적인 답일 뿐이었지만,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류에 크나큰 기여를 해서 결국은 노벨상을 탈 위업일지라도 그렇다.
2019년에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던 세 연구자가, 1980년대에 했던 연구로 상을 탔다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알고보니 노벨상 수상자들에게 '기다림'은 당연한 일인 모양이었다.
네이처지에 따르면 노벨상 수상자의 거의 절반이 업적을 발표하고도 노벨상 수상까지 20년 이상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50년 이상 걸렸던 경우도 있다고.
완수와 수상의 시차.
이 '시차'는 때로 혹독하게 느껴진다. 분명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성과의 기미조차 없을 때 그것만큼 나를 지치게 하는 일이 없다. 특히 내 눈에 괜찮았을수록, 내가 볼 땐 충분한 것 같을수록 이 시차를 믿는 게 힘들다.
하지만 노벨상 타는 사람들도 20년, 30년을 기다리는 마당에, 무슨 대단한 일을 했다고 내가 불평할 수 있을까? 가만히 세월을 흘려보낼 줄도 알아야 된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수상 소식을 알리는 위원회의 전화가 오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류에 영향을 미치는 업적을 쌓고도 '전혀 예상 못했다'고 진심으로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시차는 겸손도 가르친다.
무슨 일을 했건 시차를 예상하고 각오할 것. 기다릴 것. 노벨상 FAQ를 보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