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구원하는 사이

TV 동물농장 <효리와 순심이>를 보고 — 삶이 시작되기 위한 조건에 대해

유튜브로 동물 영상 보는 걸 좋아한다. 이번 주에는 "할 수 있다"를 외치는, 거제도 벨루가 영상을 발견한 덕분에 많이 웃었다.

가르침을 주는 동물 영상들도 즐겨본다. 늑대 영상을 볼 때면, 동료를 아끼고 지키는 법을 생각하게 되고, 사자나 북극곰 같은 최상위 포식자들의 사냥을 볼 때면 그들의 사냥 성공률이 의외로 낮다는 사실에 겸허해져서 좋다. 태어나 처음으로 바다로 뛰어드는 아기 황제 펭귄들의 영상도 좋아한다.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센 한 놈이 절벽에서 기웃기웃하다 마침내 첨벙 하고 뛰어드는데 이런 '처음'의 아름다움을 목격하고 나면, 힘이 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동물과 인간이 쌓은 특별한 우정을 다루는 영상이다. 친해지면 동전이나 지폐 따위를 주워온다는 까마귀 이야기도 귀엽고, 어릴 적부터 키워준 인간을 다 커서도 상냥하게 대해주는 사자 이야기는 몇 번을 봐도 좋다. 동물농장에 자주 등장하는 할머니와 의지하며 살아가는 강아지, 고양이들의 이야기도 좋아한다.

이번 주에는 동물농장 <효리와 순심이>를 봤다. 이효리가 유기견이었던 '순심이'를 입양해 10년을 키운 후 떠나보낸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었다. 1시간이 채 안 되는 영상이었지만, 진부함을 무릅쓰고 말해본다면 하나의 사랑이 두 개의 삶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아름다웠다.

몇 문장으로 간단히 요약하고 싶진 않은 영상이었으므로, 인상적이었던 이효리의 발언들을 옮겨 적어본다.

(16:45) "그 정도로 깊은 사랑, 어떤 다른 생명과 그 정도로 깊은 사랑과 교감을 해본 게 아마 처음인 것 같아요, 순심이가. 그러면서 제일 중요한 게 그거구나라는 걸 너무 알게 된 거죠. 깊은 사랑과 교감이, 내가 이 생을 살면서 나한테 제일 행복감을 주는 건 이거였구나라는 걸 너무 깨닫게 됐고, 그러면서 이제 그 외 부수적인 것들은 차근차근 쳐 내면서 이렇게 화려하고 부풀어 있었다면, 이제 진짜 이 사랑이 제일 내 인생에서 중요하다는 걸 너무나 깨닫게 해준."
(18:06) "아, 이렇게 동물이 사람하고 교감을 깊게 하는구나. 이렇게 사랑을 주고받고 외로워하고 슬퍼하고 그런 존재구나라는 걸 알게되니까, 그 다음부터 이제 동물들한테 관심이 더 깊게 가면서 사랑받지 못하고 외로워하고 힘든 동물들의 그 표정이나 어떤 마음일 잘 느껴지는 거예요. 순심이 만나기 전후의 저의 모습을 보면 완전 다르거든요."
(38:12) "이 죽음의 순간에 죽음만 있고, 슬픔만 있는 게 아니라 막 그런 곳곳에 놀라운 어떤 사랑의 순간들을 포착하면서 아 너무 많이 배웠고, 너무 많이 공부했고, 너무 마음이 따뜻했고 그랬어요."
(39:40) "밤새도록 깨어있었어요. 마음이 좀 불안해서. 또 막 발작을 해가지고, 제가 껴안고, 다치지 않게 꽉 껴안고 있었는데 마지막 발작을 하고 탁 숨을 멈추더라고요. 뭔가 공기가 딱 멈춘 것처럼 정적, 고요해지는 순간. 막 '순심아!' 이런 어떤 슬픔보다는, 뭔가 희한한 느낌이었어요. 아, 이 어떤 생명이 사랑을 주고받고 하다가 마지막에 자연스럽게 자기가 집착하지 않고 더 먹으려 하지 않고 더 살려고 아등바등하지 않고 훌쩍 떠나는 그 순간이 굉장히 경이롭다고 해야 되나, 그런 느낌이었어요. 고맙다, 고맙다 이런 마음.

순심이 가고 나서 저희가 다른 개들한테 훨씬 더 집중하게 됐어요. 언젠가 이별할 줄 알았지만 진짜 이별을 하는구나 너무 깨닫게 되니까 그 이별하는 순간에 제일 후회했던 것들을 후회하지말자. (…) 마지막까지도 이렇게 나를 변화시키고 가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마지막까지도 나를 철을 들게 하고 가는구나."

남을 구해 스스로를 구원하는 인생.

그러고보면 내가 매료되는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이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드라마 <의붓엄마와 딸의 블루스>도 그랬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지인의 부탁으로 꼬마 미유키의 의붓엄마가 된 아키코는, 훗날 성인이 된 미유키가 "당신에게 평생의 짐이 되어 늘 미안했었다"는 말에, 이 관계에서 가장 구원받은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음을 고백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또 어떤가. 지안에게 곁을 지키는 어른이 되어주며 가장 구원받은 것은 박동훈 부장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작가들이 창조한 세계에서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김장하 선생을 취재한 김주완 기자의 책 <줬으면 그만이지>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김장하에게 살아오면서 언제 가장 행복했는지 물어봤다.
“글쎄, 매일 행복하니까.” (p.333)

고학생들, 도움이 필요한 활동가들, 예술가들을 도우며 가장 구원받은 것은 김장하 선생이었다. 순심이를 구함으로써 가장 구원받은 것도 이효리였을 것이다. 순심이를 만나, 그녀는 비본질적인 것에 매몰되기 쉬운 연예계 생활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자신의 중심을 찾으려는 노력을 시작하게 됐다.

통념과는 달리,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구원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건 사람과 동물 사이건, 구원하는 자는 바로 그 행위를 통해 구원받는다.

가장 이타적인 행위가 실은 가장 이기적인, 스스로를 위한 행위라는 역설. 이는 어쩌면 가장 반직관적인 진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수많은 자연의 원리, 세상의 이치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공리라는 것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이토록 확실한 이치라면, 결국 좋은 삶이란 이 공리를 얼마나 빨리 자신의 삶에서 몸소 겪고, 이를 의심없이 '믿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을 수 있다. 너무나 반직관적이라 믿기 힘든 이 진실을 얼마나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가, 그리하여 그 공리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는가. 삶은 누군가를 구함으로 비로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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