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방관의 미덕
한수희, <마음의 문제> — '수능 시험 날 늦잠 잔 아이에게는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한수희 작가의 신작 산문집 <마음의 문제>를 추천받아 읽기 시작했다. 에세이집은 사놓고 막상 잘 읽지는 않는데, 이 책은 달랐다. 후루룩 책을 펼쳤다가 2장에 '수능 시험 날 늦잠 잔 아이에게는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라는 제목을 보고 홀린 듯 한 편만 먼저 읽었다.
글은 작가의 딸 이야기였다. 딸이 수능 당일,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예 시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는 것. 작가는 뉴스에서나 보던 수능날 지각하는 정신 빠진 고3이 자기 딸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며 탄식한다.
매년 수능 시험 날이면 지각해서 시험을 못 보거나 경찰차나 오토바이 뒤에 탄 채 시험장으로 헐레벌떡 들어가는 수험생들이 텔레비전 뉴스에 등장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어우, 저 정신 빠진 것들..." 하고 욕했었다. 심지어 이번 수능 시험 전날에는 친구와 함께 "그런 애들은 시험을 봐도 소용없어, 일단 수능 날 늦잠 잤다는 자체로도 싹수가 노란 거야" 하고 침을 튀기며 큰소리도 쳤었다. 그런데 내 딸이 바로 그 정신 빠진, 싹수가 노란 애였다. 이럴 수가. (p.77)
하지만 나의 눈길을 더 끈 건 작가 본인이었다. 작가는 딸이 당연히 평소처럼 잘 일어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알람을 맞춰두지 않았다. 평소에 알람 없이 일어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딸 수능일에 알람 없이 자다니. 그날 집에는 작가의 남편도 집에 있었고, 아빠인 그 역시 쿨쿨 자고 있었다고 한다. 재밌는 가족이었다.
그날 밤에는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느지막이 잠들었다. 알람은 웬만해서는 맞춰두지 않는다. 아이들이 늦어도 일곱 시 반에는 일어나기 때문이고, 나 역시 일어나는 시간이 그즈음으로 거의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딸은 지금껏 늦잠을 자거나 내가 깨워야 했던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알람 소리 한 번에 벌떡 일어나는 아이다. 게다가 내일은 수능 날, 긴장이 되어서라도 오래 못 잘 거라고 믿었다. 믿어서는 안 됐는데···. (p.76)
뭐라고 욕을 할 수도 없었다. 나도 수능 날 늦잠을 잔 엄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험장 입실 마감 시간도 몰랐던 엄마이기 때문이다. 알람조차 맞추지 않았던 엄마이기 때문이다. (p.77)
한국인에게 수능은 인생 초반, 가장 큰 분기점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 수능을 늦잠 때문에 못 보게 됐을 때, 엄마도 아빠도 깨워주지 않았을 때, 그 일은 한 아이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작가는 살짝 걱정을 내비치면서도, 딸의 미래를 자신이 알 도리는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그 일은 그 아이의 전 인생에 걸쳐 아주 근본적이고 심오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이는 깨달았을 것이다. 누구도 내 인생을 나만큼 신경쓰진 않는다는 것을. 내 인생의 최전선에는 바로 단 한 사람, 나 자신밖에 없음을 온몸으로 깨우쳤을 것이다. 여차하면 타인이 운전대를 잡아 구출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지배하는 삶과, 아닌 삶. 두 삶은 확연히 다른 삶의 무늬를 갖게 된다.
*
일하는 우리의 모습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일을 할 때, 최후의 검토는 가능하면 그 일을 맡은 사람이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요즘의 생각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손을 놓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 수수방관하는 태도, 믿어주는 마음은 가끔 수능 결석처럼 '사고'로 이어지는 무시무시함도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진정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몰입해 일하려면 감수해야 할 영역일 수 있다. 최근 신경쓰고 있는 부분인데 아직 많이 서툴다. 자꾸 거들게 된다.
때론 눈을 질끈 감아야 하는 순간이 있다. 거들고 싶어도, 큰일 날 듯 보여도 팔짱을 낄 수 있어야 한다. 더 멀리 봐야 하는 순간에는 그래야 한다. 수수방관은 때론 미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