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아하지 않는 능력
노희영 고문이 말하는 브랜드를 만드는 데 필요한 태도
노희영 고문의 유튜브 채널이 화제다. 그녀를 인터뷰한 롱블랙 기사를 5월에 스크랩해두었는데, 이제야 꺼내 읽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답변은 이것이었다. "남이 귀찮은 걸 해야 뭔가를 이뤄낼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난 귀찮은 게 없어. 내 일을 위해서라면. 필요하면 무조건 달려가요."
'귀찮아하지 않는 능력'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초능력이 아닐까 한다. 노희영 고문은 자신에겐 귀찮은 게 없다고 말한다. 60대가 된 그녀는 여전히 새로운 경험으로 삶을 꽉 채운다. 맛집에 직접 줄을 서고, 넷플릭스를 보고, 신제품은 사서 써 본다. 훌륭한 소비자로서의 경험이 축적되어야 좋은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보 수집에도 몰두한다. 디지털 디톡스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그녀는 하루종일 인스타그램을 한다고 말한다. 납득이 된다. 마케터에게 엄청난 스크린타임은 부끄러움이 아닌 자랑일 수 있다.
내가 돌아다니는 거 인스타에 다 올리지도 못해요. 사람들이 ‘저 여자 미쳤다’ 그럴 것 같아서. (...) 정보의 접점을 많이 만들어요. 그리고 모든 정보에 귀를 열어두고 있는 거지. TV도 많이 보고 친구들도 많이 만나러 다니고 인스타도 하루 종일 봐요. 아마 내 스크린 타임 보면 장난 아닐 거야. 막 열 몇 시간 이럴걸요. 그래서 옛날에 회사 다닐 때 욕 많이 먹었었어요. 회의 시간에도 그럴 때가 있었거든.
https://www.longblack.co/note/1444
시장 리서치도 이럴진대, 제품을 만드는 것은 어떻겠는가. 나 혼자 귀찮지 않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같이' 귀찮음을 무릅쓸 수 있어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II 플라스틱 케이스의 색상을 정할 때, 2,000가지가 넘는 베이지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며 불평했다고 한다. 잡스의 동료들은 분명 수없이 많은 순간에 '굳이?'가 떠올랐을 것이다. 적당히 좀 하지 또 왜 이러나 싶은 마음.
잡스가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후 채용한 직원인 제이 엘리엇은 잡스의 두드러진 특징 하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제품에 대한 열정이 강박에 가까울 만큼 남달랐습니다. 완벽한 제품을 만들려는 열정 말입니다.” 반면 마이크 스콧은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실용주의를 우선시하는 타입이었다. 두 사람은 애플 II의 케이스 디자인을 놓고도 충돌했다. 플라스틱 케이스 색깔을 결정하기 위해 애플이 선택했던 색상 전문 업체 팬톤 사는 2000가지 종류의 베이지색을 갖추고 있었다. 스콧은 이렇게 회상한다. “세상에, 스티브는 그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게 없다고 했어요. 좀 더 다른 베이지색을 원했어요. 결국 제가 나서서 설득해야 했지요.” 케이스 디자인의 세부적인 부분을 조율할 때도 잡스는 모서리 부분을 어느 정도로 둥글게 만들어야 할지를 놓고 며칠 동안 고민했다. 스콧은 말한다. “모서리가 얼마나 둥근지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저는 그저 빨리 디자인이 결정됐으면 했어요.”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하지만, 그 볼멘 소리를 감수할 수 있어서 잡스는 잡스가 되었다. 그는 팀에 '귀찮음'을 무릅쓰기를 요구했다. 물론 모두가 동조하진 않았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귀찮음을 견디지 못하고 애플을 떠났다.
멋진 것을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멋진 것을 만들고 싶은가 물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멋진 걸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강한 나머지, 귀찮음은 자기도 모르게 내려놓는 사람. 그런 사람은 드물고 그래서 귀하다.
탁월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귀찮음을 각오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이폰을 만드는 스티브 잡스쯤 되어야, 로켓쯤은 쏘아올리는 일론 머스크쯤 되어야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지금 여기서 작은 한 발을 나아가는 것에도 귀찮음은 필요하다. 이번 주에 나는 얼마나 귀찮음을 감당했던가, 셈을 해보게 된다.